길거리, 지하철, 식당, 교실 등 어디서든 주변을 배려하지 않고 큰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종종 마주칩니다. 그럴 때마다 문득, ‘목소리 크면 이긴다’는 잘못된 전제를 믿고 행동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비대면 시대, 갈수록 깊어지는 사회 양극화 속에서 서로의 견해가 엇갈리는 일이 많아지는 요즘, 우리는 ‘잘 말하는 법’보다 ‘잘 듣고 토론하는 법’에 더 주목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이전 세대에는 웅변대회, 요즘엔 디베이팅(Debating,토론) 대회 등을 통해 말하는 훈련을 받아왔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토론은 ‘생각을 나누는 과정’이 아니라, 입시에 한 줄 더 채우기 위한 스펙 항목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입시 위주의 교육을 받은 많은 세대는 ‘진짜 토론’이 무엇인지 배워보기도 전에 어느새 어른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제는 ‘이기는 말’보다 ‘통하는 말’을 하는 법, 차분하지만 흔들림 없는 말하기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청소년기부터 이런 태도와 기술을 익히면, 대학생활은 물론 사회에 나가서도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에 설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상대를 설득하는 디베이트의 기술을 페이스 조절, 존중의 태도, 논리적 빌드업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1. 페이스를 유지하는 연습, 조급하지 않고 주도권을 잡는 법
속사포처럼 빠르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토론은 속도의 싸움이 아닙니다. 말이 빠르다고 설득력이 있는 건 아니며, 목소리가 크다고 논리가 강한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설득력 있는 토론자는 자신의 페이스를 일정하게 유지하며, 순간적인 감정 기복 없이 주도권을 잃지 않는 태도를 유지하는 사람입니다.
- 말하기 속도와 톤을 일정하게 유지하세요.
긴장이 되면 말이 빨라지는데, 오히려 천천히 말하는 것이 상대에게 신뢰를 줍니다. - 핵심 메시지는 한 문장으로 요약하세요.
주장이 길어지면 상대는 논점을 놓치게 됩니다. ‘핵심은 이것입니다.’로 정리하세요. - 침묵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상대의 말을 듣고 2~3초 정리 후 답변해도 늦지 않습니다. 여유가 곧 힘입니다. - 사전 시뮬레이션 연습이 중요합니다. 예상 반론을 친구와 짜보고, 답변하는 훈련을 반복해 보세요. 페이스 조절 능력은 반복을 통해 길러집니다.
2. 상대를 존중하며 나를 드러내는 태도
토론을 잘하는 사람은 잘 듣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내가 말할 때만 진지하고, 상대가 말할 땐 무표정하거나 관심 없는 표정을 짓는다면, 진지하게 계속될 대화에서 신뢰가 무너집니다.
- 고개를 끄덕이거나, 눈을 맞추며 상대의 의견을 경청하세요.
'나는 듣고 있다'는 신호가 상대에게 심리적 안정을 줍니다. - 상대의 발언을 요약하고 인정하세요.
예: “말씀하신 요점은 A, B 두 가지로 보입니다. 저도 B에 대해서는 부분적으로 동의합니다.” - 공격이 아니라 대화처럼 말하기.
“틀렸습니다”보다는 “이 부분에선 다른 관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등으로 표현하세요.
토론 중 상대방에 대한 존중은 상대를 다소 느슨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방어하지 않도록 만드는 언어를 써야, 내 주장이 들어갈 공간이 생깁니다.
3. 생각을 쌓아가는 기술, 빌드업과 관철의 논리
많은 청소년이 ‘말싸움’은 잘하지만,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데에는 어려움을 겪습니다. 말의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구조와 흐름입니다.
토론의 빌드업 구조:
- 주장 → 근거 → 예시 → 요약
- 문제 제기 → 원인 분석 → 대안 제시
예시:
“TV 광고에 음주 장면 제한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청소년들이 선호하는 셀럽을 따라 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 자료에 의하면 TV광고나 드라마 등의 콘텐츠 속의 무분별한 음주는 청소년들의 음주 시작 연령이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나왔습니다. 따라서 ‘연예인의 술 광고’나 ‘지나친 음주 장면’ 들은 제한하는 규제가 필요합니다.”
- 핵심은 논리의 연결입니다. 주장과 근거 사이의 간극을 메꾸는 것이 ‘빌드업’입니다.
- 데이터, 사례, 비유를 활용하세요. 이성(논리) + 감성(스토리) 조합이 효과적입니다.
- 되묻기 기술을 연습하세요.
예: “그 말씀이 맞다면,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요?”
결론
디베이트는 싸움이 아니라, 서로 다른 관점이 만나 더 나은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입니다. 그 안에서 ‘차분함’, ‘존중’, ‘논리’는 우리가 어떤 의견을 갖고 있든 토론할 때 상대방과 듣는 사람에게 설득력을 가지게 해 줍니다.
청소년기부터 이런 디베이트 감각을 훈련한다면, 발표력은 물론 리더십, 커뮤니케이션, 팀워크까지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감정을 앞세우기보다는 생각을 빌드업하고, 말보다 태도가 먼저라는 것을 꼭 기억하세요.
말의 무게는 마음의 무게입니다. 그 무게가 깊을수록, 당신의 한 마디는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